열강들이 구 스페인 영토였던 쿠바나 남미에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에 적용
②신세계에 대한 불간섭 원칙 : 유럽의 구세계와 신세계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③유럽정치에 대한 불간섭
의의:남미에 대한미국의 야망과 훗날 팽창주의 정책으로의
태프트 밀약의 진실 (2005, 동아일보사 학술지)
마지막으로 네 번째 배경에는, 미국의 중국에서의 상업적 이익 추구를 위해 조약을 체결했다는 점이 있다.
◦ 일본의 입장
가쓰라-테프트밀약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측근인 미 육군 장관 테프트와 일본 총리 가쓰라가 비밀리에 협약 협약인지
동아시아와 한반도에 정치, 군사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앞으로 10~15년 동안 유지한다고 전망할 때, 한미동맹도 존속시키는 것이 한국의 궁극적인 국익에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더욱이 부상하는 중국과 일본의
대한 강경방침을 내세우면서도 주저했던 오스트리아의 지도자를 격려하고, 오히려 빨리 전쟁을 개시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이 독일 측이었음이 밝혀졌다. 독일의 정부․군부 지도자가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전쟁이 러시아나 프랑스까지도 끌어들이는 유럽전쟁으로 될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이
중국과 한반도는 서구문명에 대해 체제유지라는 큰 틀에서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면, 일본은 개항 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받아들여 서양열강들과 식민지 다툼을 할 수 있는 국력을 키움으로써, 결과적으로 일본은 아시아의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고, 중국과 한반도는 이들 동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합방하자 이태왕으로 불리다가 1919년 정월에 승하하였다.
이 때 고종이 일본인에게 독살 당하였다는 풍문이 유포되어 민족의 의분을 자아냈으며, 인산례로 국장이 거행될 때 전국 각지에서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났다. 능은 홍릉이며, 저서로는 주연집이 있다. 한민족 문화대백과
러시아나 독일, 프랑스, 일본 등 현상 파괴적 세력들이 중국을 분할하거나 자국의 영향권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저지, 중국의 주권과 영토의 보호를 강조. 대륙에 강대국이 출현, 패권적 지배력을 확립하여 해상국의 생명선인 해상교통로를 위협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대륙 국가들간에 세력균형 정책
정책을 펼치게 된다. 나아가 조선은 이러한 쇄국정책을 기조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항하게 되었다.
반면 1853년 미국의 해군 제독 페리(Matthew Calbraith Perry)에 의해 강제로 개항을 한 일본은 곧 메이지유신(明治維新, the restoration of meiji)을 통해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나아가 단순한 서
외교노선은 러일전쟁에서 그 목적이 거의 달성한 것으로 보였다. 다시 말해, 러일전쟁에서의 승리와 그에 후속하는 러시아와의 강화조약 및 협약에 의해 일본은 조선의 실질적 지배권을 확보하였고, 나아가 만주에 대한러시아와의 분할 지배를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러일전쟁까지의 일본의 외교정책
열강의 반열에 올라서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러․일간의 각축의 대상이자 전장의 일부가 되었던 조선은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인하여 얼마 안 있어 경술국치의 치욕적인 한일강제 병합하게 되 한국은 일본의 완전한 속국이 되게 되었다.
이 장에서는 러일전쟁에 대한 각국의